2024년 7월 25일 지휘자 서신
<저 천국 음악 소리>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 1서 4장 10절)
이 찬양을 놓고 지휘자 서신을 시작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글을 쓸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천국 음악소리는 어떤 것일까’에 대한 글을 쓸지, 아니면 2절 가사에 있는 것처럼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사랑”에 대해 쓸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뜩 영어 원문 가사를 보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 원문 가사에는 놀랍게도 ‘천국 음악 소리’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부르는 찬양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부르시는 노래’라는 의미였습니다: “Sometimes I hear God’s music… His music fills my heart with peace.”
교회음악 지휘자로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사역했지만 하나님이 노래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으레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도 노래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에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17). 네 맞습니다.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를 너무 기뻐하셔서 즐거이 노래 부르십니다.
또 다른 말씀을 찾았습니다. 집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 아버지의 반응이 무엇 이었습니까?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며 즐거워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죽었던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누가복음 15:24).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 늙은 아버지를 노래하게 만들었습니다. 춤추게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에게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과도 같습니다. 잃었다가 다시 얻은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쁨으로 노래하며 춤추시는 것입니다.
<저 천국 음악 소리> 2절에는 놀라운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의 노래를 불러 주셨네: The music of God's love for me He sent his Son to sing.”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들려주시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노래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이었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너무 멀어져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몸소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사랑의 노래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노래는 어떨 때 나옵니까? 노래의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노래가 나올 수 있습니까?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그 노래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노래가 설득력이 없으면 생명력도 없어서 곧 잊히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노래는 우리들을 설득합니다. 생명력이 있어서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감동을 줍니다. 결국 그 노래가 우리를 변화시키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끕니다.
저는 이번 지휘자 서신을 쓰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천국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은 우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작곡하시고 선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한 앙상블이 되기 위해서 우리의 화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의 찬양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노래의 주제는 ‘우리’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완전한 앙상블을 이루시는 카리스 찬양대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김동근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