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5일 지휘자 서신
<주의 보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1:7)
이번 주일 부터 6주간의 사순절, 그 첫번째 찬양으로 <주의 보혈>을 올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찬양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이 입으신 상처와 흔적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보혈은 상처를 통해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보혈을 흘리시기 전에 상처를 먼저 입으셨습니다. 온 몸은 채찍으로 인해 상처를 입으셨고, 머리엔 가시관으로 인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양 손과 발에 큰 못으로 구멍이 났고, 옆구리는 창에 찔려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온통 상처 투성이였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온갖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십니다. 저는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과연 부활하신 예수님은 온전한 몸을 하고 계셨을까 아니면 상처의 흔적들을 그대로 가지고 계셨을까 라는 것입니다.
묵상하던 중에 유효한 단서를 하나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8일 만에 제자들이 모여있는 방에 홀연히 나타나십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27). 맞습니다. 예수님은 상처를 입었던 그 모습 그대로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상처 입은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입으신 상처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완성하신 사랑의 흔적입니다. 그 흔적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실제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음을 알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 흔적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시는 증거들입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견고히 붙들게 하는 도구와도 같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상처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부활하셨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상처를 입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 상처가 낫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그 상처가 나은 후에도 흔적은 여전히 남아서 평생을 함께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그 흔적을 여전히 몸에 품고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생각해봅시다. 나도 지금 예수님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6:17). 실제로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당시에 율법을 중시했던 거짓선생들을 향해 육체를 자랑하지 말고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자랑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3-14).
사도바울이 가진 예수의 흔적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그가 무엇보다도 자랑하기를 원했던 그것, 언제든지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기를 원했던 그것, 그것이 십자가였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이었습니다.
원래 순종은 종이 주인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반대였습니다. 종을 위해 주인이 순종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복음이지만 이것을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겠습니까. 세상에 드러났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비밀스러운 일입니다.
올 해 사순절 기간 동안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의 흔적을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동근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