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9일 지휘자 서신
<주께서 높은 보좌에>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이사야 6장 1-3절)
이사야가 환상 중에 들은 천사들의 찬양은 이것입니다: “거룩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시도다.” 온 땅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설명하고 표현하시겠습니까? 우리가 기도 중에, 찬양 중에 너무나도 자주 사용하는 말 이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려고 하면 한마디로 말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믿음의 분량 대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묵상과 이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영광’ 이라는 말에는 ‘무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게가 있는 것은 쉽게 옮겨지지 않습니다. 큰 바위 같아서 바람이 분다고 넘어지거나 홍수가 난다고 휩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렇습니다. 세상의 판단기준에 따라 이리저리 얼굴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전 까지 예수님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다짐했던 베드로가 여종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하는 모습은 정말 영광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지극히 높으신 분을 지극히 낮은 우리가 영화롭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보잘 것 없는 나의 재능과 노력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에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내가 가진 빛으로 참 빛 되시는 하나님을 더 빛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겠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애쓰며 살지만 사실 하나님은 이미 영광스러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천사도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라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그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 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나 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합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하며 제한적인고 경건하지 못한지를 알아야한다는 말입니다. 결코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손경민목사님의 찬양 <은혜>에서 말하는 것 같이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라고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고백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지요?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지요? 만약에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고 이런 사람을 통해 영광 받으십니다.
우리가 마음이 분주 하고 불안하며 초조 할수록, 내가 할 역할을 모두 마친 후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10).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외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나의 나 됨을 알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시는 카리스 찬양대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휘자 김동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