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지휘자 서신
<피난처 되신 주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편 46:1-7)
매주 지휘자서신을 쓰는 것이 제게는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일입니다. 소양이 넓거나 영성이 깊은 사람이라면 한두 시간 만에 훌륭한 글을 쓸 수 있겠지만, 저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큰 우여곡절 없이 그저 완만한 삶을 살아온 저의 글이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여겨지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런 제가 공개적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 얼마나 큰 도전이 되겠습니까. 더군다나 매주 주제도 정해져 있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일을 멈출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글을 쓰는 과정 가운데에 얻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어떤 즐거움일까요? 그것은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즐거움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즐거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다시 기억해 내는 즐거움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실 것을 확인하는 즐거움입니다.
저는 그렇게 지난 2년 6개월 동안 매주 지휘자서신을 쓰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어왔습니다. 그런 가운데 나와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많은 기억을 되살리며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관계의 회복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오래된 사진을 보며 잊혀 가던 추억을 되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는지를 기억하는 순간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비극 중의 하나는 하나님과 함께했던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면 감사할 일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망각하면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망각하면 교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번 주일 찬양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피난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피난처로 인도하는 가이드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디로 가면, 또 어떻게 하면 피난처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피난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피난처로 들어가기 위해 자격을 갖추거나 값을 지불해야한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십니다. 그저 내게로 오라고만 하십니다 (마태복음 11:28).
우리의 피난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면 나는 이미 피난처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자꾸 망각하고 산다는 것에 있습니다.
지난주 지휘자서신에서 우리의 믿음 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확증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3).
사는 동안 우리는 생각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분주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들로 인해 우리의 눈이 가려지고 하나님을 잊을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내 곁에 계신 임마누엘 하나님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러면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이 다시 우리들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피난처 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잊지 않으시는 카리스 찬양대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김동근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