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3일 지휘자서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 1서 4장 9-10절)
수년 전에 한국에 있는 KB금융그룹에서 감동적인 영상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40개월 미만의 아이를 가진 젊은 아빠들을 상대로 “아동 학습 발달에 미치는 아빠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설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은 몰래 카메라였습니다. 여러 명의 젊은 아빠들이 한 사람씩 작은 방에서 설문조사를 합니다. 그 질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아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가요?
당신 차에, 셀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이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것은 언제인가요?
이 질문에 답을 하는 아빠들은 미소를 짖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같은 질문을 대상만 바꾸어서 다시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것은 언제인가요?
최근에 아버지를 안아본 적이 있나요?
아버지가 주무시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나요?
당신의 차에, 셀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버지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조금 전만 해도 잔잔하게 미소 짓던 젊은 아빠들의 마음이 먹먹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굽니다. 설문을 이어가면서 이제는 미안한 마음에 흐느끼기 까지 합니다.
갑자기 방 안에 있던 모니터가 켜지면서 각자의 아버지의 음성이 나옵니다. 영상으로 고백하는 모든 아버지들의 한가지 마음은 ‘미안함’ 이었습니다. 그저 더 잘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말입니다. 아버지들은 사랑하고 사랑해도 계속 미안하고 부족하다는 생각만 하게 되나 봅니다.
사랑은 물 같아서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어머니로부터 딸로, 하나님으로 부터 우리에게로 말입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본능적인 것 같습니다. 어색하고 서툴 수는 있어도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아버지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본능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 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성경에서도 ‘부모를 사랑하라’ 라는 표현 보다는 ‘부모를 공경하라’ 라는 표현을 더 자주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할 때에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위를 우러러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판단 할 기준 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기 까지 말입니다 (로마서 5:8).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삼으셨다는 말씀의 깊이를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마음으로 품으시고 나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셔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는 말씀입니다 (스바냐 3:17). 이제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만큼 갚아드려야 합니까? 우리는 결코 그 사랑을 갚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보답은 그 사랑을 알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번 주일은 Father’s Day 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조금 더 이해하는 주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김동근 지휘자,
https://www.youtube.com/watch?v=9-VkbFe2U3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