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8일 지휘자 서신
<만유의 주 찬송하리>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21-22)
이번 주일 찬양 <만유의 주 찬송하리>는 주의 평화를 온 땅에 내려달라는 기도문 같은 찬양입니다. ‘주의 평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항상 가장 바람직한 해답은 성경에서 나오지요. 그래서 이번에도 ‘주의 평화’를 잘 표현하고 있는 말씀이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좋아하는 시편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편 131:1-2)
그리스도인에게 평화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임을 말해주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스스로를 ‘젖 뗀 아이’로 묘사하고 하나님을 ‘어머니의 품’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다윗이 왜 ‘젖 뗀 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완전한 답을 얻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름 생각해낸 것은 이것입니다.
젖을 뗀다는 것은 아이가 엄마로부터 처음으로 진지하고 냉정한 거절을 당하는 것입니다. 울어도 안되고 떼를 써도 통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너무 단호해서 생소하게 느껴졌겠지요. 어머니로서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는 엄마를 신뢰합니다.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전과 같이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고요하고 평온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것이지요.
돌이켜보면 우리도 사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했던 기억들이 많이 있습니다. 되고 싶었던 나의 모습, 하고싶었던 일들, 누리고 싶었던 것들을 생각하면 정말 많은 것이 거절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나의 그릇을 비워두신 것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가짜로 나이 그릇을 채우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절하심으로 인해 내가 어린아이 시절의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를 향하여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젖을 떼는 과정을 통해 엄마의 절대적인 의지 앞에서 낮아지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도 거절당하는 것으로 인해 더욱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고 그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올바로 서게 되고, 거기서 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평화를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거절 가운데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얻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던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 사랑 가운데 얻는 하나님의 평화를 알기 때문입니다.
지휘자 김동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