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1일 지휘자 서신
<송축해 내 영혼>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시편 98:1)
남가주 새누리교회 박성근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밤이 새도록 씨름을 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게 됩니다. 누군가를 붙잡고 실랑이를 할 때에 중심을 잃게 되면 넘어지지 않으려고 오히려 손에 더 힘을 주어 단단히 붙잡게 됩니다.” 이 말씀을 듣고 뜻밖의 해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을 보니 환도뼈가 골절이 된 후에도 여전히 끈질기게 씨름을 하고있는 야곱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이 이렇게 끝까지 씨름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날 밤 야곱의 모습을 생각해봅시다. 그는 오늘 밤이 지나면 400명의 장정들을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는 에서를 만나야만 합니다.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외로웠을 것입니다. 모든 가족들과 소유를 멀리 두고 혼자 남은 야곱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과 씨름을 합니다. 그 때 만큼 하나님의 축복이 간절했던 때가 있었을까요? 환도뼈가 빠졌으니 이젠 포기할만도 한데 전혀 하나님을 보내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기진맥진한데도 더 매달립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떠나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가는 길에 벧엘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라고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믿고 의지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를 도울 사람도 없는 이 순간 야곱에게는 그 벧엘에서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 외롭고 두려운 그 순간에 얼마나 하나님의 임재가 절실했을지 마음으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야곱 만큼 굴곡진 삶을 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뒤 돌아보면 생각하기도 싫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정색하며 거절할 것입니다. 고통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와 다른 것은 내가 어찌할바를 모를 때에 나의 곁에 계신 하나님의 손을 더 간절히 붙잡는 법을 터득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날이 밝도록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던 것 처럼 말입니다.
밤새도록 씨름을 한 야곱은 이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이스라엘’ 이라는 새 이름까지 받았습니다.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짓고 일어나 걸을 때에 해가 밝았다고 성경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아침에 만난 에서의 얼굴은 이제 두렵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후의 변화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만나는 곳 마다 제단을 쌓거나 그 곳의 이름을 지어 기념했습니다. 언제라도 그 때 하나님과의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며 마음 속에 돌단을 쌓아봅시다. 그 돌단이 있는 곳을 잘 기억해둡시다. 그래서 언제든지 위로와 용기가 필요할 때에 그 앞에 가서 하나님과의 추억을 다시 생각해낼 수 있도록 합시다.
이번 주일 찬양 <송축해 내 영혼>의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해가 뜨는 새 아침 밝았네 이제 다시 주님 찬양.” 지난 한 해 고난 중에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또한 2024년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를 두르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찬양합시다.
지휘자 김동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