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2일 지휘자 서신
<영광 나라 천사들아>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누가복음 1장 31-33절)
성탄절은 구약에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마침내 실현된 날입니다.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사람들을 위해 베푸신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날입니다. 절대자 하나님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야만 했을까요? 이것은 제가 오랜 시간 이해하려고 애썼던 질문 중의 하나 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요? 우리들이 더 이해하기 쉽고, 사람들에게 알리기에 더 효과적이고, 모든 이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은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모두에게 알려졌지만 모두가 이해하지는 못하는 비밀스러운 일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어느정도 얻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제가 주목한 말씀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입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육신으로 오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 해봅시다. 만약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의 영광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전능자 하나님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사람들이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그려본다면 제각기 다른 모습을 만들어낼 텐데 그것이 어찌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곁에 오셔서 함께 숨을 쉬며 사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육신은 무지한 우리들을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친절이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과 부활 승천하신 일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에는 “그가 의인이면 하나님이 구원하실껄” 하며 비난하던 사람들도 있었고, 장차 자기에게 닥칠 일들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했던 여자들도 있었고, 디베랴 호수에서 다시 만난 베드로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육신을 입은 예수님은 우리들 곁에서 죽음과 부활을 몸소 보여주시며 우리들로 하여금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셨음을 믿게 하셨습니다.
요한1서 4장 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성탄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신 날입니다. 그 사랑이 육신을 입은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육신은 그대로 훗날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이 보다 더한 사랑이 있을까요? 우리를 살리시려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휘자 김동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