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4일 지휘자 서신
<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21:5-6)
고난의 때에 부를 이름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사람은 상황이 나빠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만나 잠시 어려워해도 완전히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목놓아 외칠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를 때에 항상 도우시는 그 이름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이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후서 6장 8-10절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 말씀을 읽을 때 마다 ‘아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싶은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먼저 관점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 보다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무명하고, 죽은자 같고, 징계 받는 사람 같고, 가난하고, 능력 없는 사람으로 보아도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가 나에게는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무명하게 여겨져도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하시면 된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속이는 자라 하여도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참된 것을 말한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내가 그런 삶을 살다가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여도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럽습니다. 나에게 있는 것이 보잘 것 없지만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5000명을 먹이신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나를 걱정스럽게 생각하며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내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 인한 벅찬 기쁨이 있다면 그보다 더한 보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새벽기도 본문말씀 히브리서 11장 후반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히브리서 11:38 중에)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은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평판을 얻기 위해 반드시 놀라운 업적을 쌓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주변 일을 바라보려고 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판단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은혜의 유통자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힘겨운 환난 몰려와도 일어서리라; 그대 그늘 속에서 잊지 말것은 주 함께하심이라.” 이번 주일 찬양 가사의 일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기억하는 것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 되는 첫걸음 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다윗의 이 고백이 모든 카리스 찬양대원들의 간증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김동근지휘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