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6일 지휘자 서신
<묘한 세상 주시고>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로다” (시편 50편 23절)
교회가 기념하는 중요한 절기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성탄절, 고난과 부활절, 오순절 성령강림, 그리고 추수감사절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절기를 매 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절은 조금 특별한 면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절기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기념하는 것이지만 감사절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키는 감사절의 유래는 분명합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처음으로 추수한 것을 감사드리며 예배한 것이 그 기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변에는 농사를 지어서 추수를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음식이 곧 목숨과도 같은 절박한 상황도 아닙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 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감사절이라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감사는 날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범사에 하는 것이고, 삶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자세 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 전서 5:18) 감사는 범사에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감사절을 정해놓고 기념하는 것은, 감사가 저절로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감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셨던 일들을 기억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고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장 근본적인 감사의 제목은 따로 있습니다. 그 제목은 바로 “하나님” 그 자체 입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좋은 선물을 받으면 선물 때문에 기뻐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선물을 나에게 준 사람을 인해 더 기뻐합니다.
하박국선지자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이것이 믿음 있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예수님이 한 마을을 지날 때에 나병환자 열 명을 고치신 일이 있습니다. 돌아가던 길에 나음을 입었음을 알게 된 아홉 나병환자들은 기뻐서 각기 제 길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 예수님에게로 와서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에게는 나병이 나은 것도 너무 기쁘지만 그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더욱 기쁜 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린 그 사마리아인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 나병이 나아서 감사하지만 그것 보다는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 감사 주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인해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해 감사하시는 카리스 찬양대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묘한 세상 주시고: https://youtu.be/rtGqpNsayjc?si=3NGAYfRjtRKWvmJd
김동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