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일 지휘자 서신
<그 사랑>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5-39)
지난 주 지휘자 서신의 본문 말씀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하며 시작됩니다. (로마서 1:16)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이 말을 쓰는 것은 당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까?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그런 일이 가능합니다. 베드로도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맹세하고서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순간의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서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사람이 가진 의의 한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는 어떻습니까? 이번 주일 찬양 본문 말씀 로마서 8장 35-39절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의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아는 가장 공포스러운 것들, 사람으로서는 능히 이길 수 없는 능력들을 열거합니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벌거벗음), 위험, 칼, 사망, 생명, 천사들, 권세자들 (악한 영),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그 외 어떤 피조물.’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힘을 합쳐 나를 공격해와도 나를 안고 계시는 하나님의 품에서 나를 빼낼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하나님과 나 사이를 단단히 감싸고 있는 것은 나의 팔이 아니라 하나님의 팔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의 차이입니다.
조성환목사님이 작곡하신 “생명의 강가로” 라는 찬양의 가사에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토록 여러 번 새 삶을 스스로 노력해봤지만 번번히 실패해 낙심해 있을 때. 어느날 내게 임하신 고귀한 주님의 사랑 십자가 못박힌 주 보게 하셨네.” 이 찬양이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의 삶은 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완성될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어느날 내게 임하신’ 하나님의 사랑 만이 나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지치기도 하며 더 나아가 실족하기도 합니다. 만약 내가 지금 넘어져 있다면 지금의 초라한 나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순간에도 여전히 나를 바라보시고 나에게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죽어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변함 없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날마다 다시 일어서시는 카리스 찬양대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카리스 찬양대 <그 사랑>
https://www.youtube.com/watch?v=07OF4zkcTWs
김동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