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올립니다.
벌써 해가 얼마나 길어졌는지 겨울 같으면 칠흑같이 어두워졌을 늦은 오후 시간인데도
창밖의 햇살은 눈부시게 반짝거립니다. 마당 한쪽 귀퉁이에 몇 년 전 심어놓은 포도나무
이파리들이 진녹색으로 작은 넝쿨을 가득 메웠고 아직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햇살을
받아 그 푸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밑의 크고 작은 화분들이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화초를 기르는 일에는 젬병인 내가 아무렇게 마구 잘라내었어도 그들은 불평 없이 묵묵히
때가 되니 잎을 내고 꽃을 피워주고 있습니다. 보는 즐거움이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도 보고 계시지요?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싱싱하게 자라 할 일을 하고 있는 이작은
식물들의 책임 완수를 칭찬하고 계시지요? 물을 주기위해서 아침마다 이들을 돌보는 저도 참으로
사랑스럽고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데 하나님은 더 좋으시지요?
“나는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 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아주 오래전 주일 학교 때
열심히 불렀던 이 찬양이 문득 기억이 나서 불러 보았습니다.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예배도 영상으로 집에서 드리고 기도모임이나 다락방 모임도
단 톡 방의 전화로 하고 있답니다. 얼굴과 얼굴로 보면서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는데 우린 그런
능력이 없어서 그저 전화로만 서로 목소리 들으며 공부하곤 합니다.
선한 사람이 왜 고통을 받는가 하는 주제로 공부하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오늘의 상황이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여 코로나 사태 때문에 집에만 있게 된 일에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것을 고백하는 편지를 당신
께 올리고 싶어졌습니다.
하나님, 집 콕( 우리가 만든 은어인데 아시죠?) 하면서 제가 그동안 얼마나 부질없이 시간낭비와 소모적인 일을
해 왔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별 특별한 일이 없으면서도 이리저리 쏘다니며 사람을 만나 속된 말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했고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물질을 소모했고
가지 않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생각 없이 해왔는지 많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사태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금도 이런 일은 계속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 갈 곳도 없고 특별히 만날 사람도 다 막혀 버려서 집에만 있게 되니 성경도 더 많이 읽고 기도하는
일도 자주하며 아침저녁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니( 혼자) 나도 모르게 기쁨이 넘쳐나고 말씀도 정독하며 전에
지나쳐 버렸던 요긴한 말씀들도 많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구나! 그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셨구나!
잘 안다고 했던 말씀이 생활 속에서 살아 역사하는 능력의 말씀으로 꿈틀거리며 실감하는 은혜를 맛보게 되었습
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임이 분명합니다. 삶으로 체험하지 않으면 말씀이
어떻게 내게 능력이 되겠습니까?!
하나님, 코로나 사태로 이것을 터득하게 되어서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현실을 아주 싹 바꾸어 버렸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고 상상 할 수도 없음을
또다시 고백합니다. 이제는 집에만 있는 일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그러나 나의 이런 고백이 혹 어떤 이들에게는 여전히 아픔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직도 고통 가운데
있는 지체들과 당신의 백성들을 긍휼이 여겨 주시고 그리고 어서 속히 이 코로나 사태가 끝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저의 두서없이 올린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내일 아침 예배드릴 때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